트로트계의 거목 송대관(78)이 7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는 “어제 남편이 설사를 계속해 기력이 없어 응급실에 왔는데, 오자마자 심장마비가 와서 돌아가셨다”며 오열했다. 평생을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태운 그는 끝내 마지막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해뜰날’로 국민적 사랑받은 가수 트로트 거장 송대관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후 무명 시절을 거쳐 1975년 ‘해뜰날’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해뜰날’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노래로, 당시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해뜰날’이 히트하면서 ‘쨍’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을 정도로 당시 사회 분위기에 딱 맞는 희망의 노래였다”며 “그의 음악은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시대의 응원가였다”고 평가했다.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전성기 이끌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 송대관 라이벌
송대관은 태진아, 설운도, 故현철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가요계를 이끌었다. 특히 태진아와는 오랜 기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각종 무대와 방송에서 유쾌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
태진아는 송대관의 별세 소식에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침 식사도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다”며 “송대관 선배는 내게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 30년 가까이 라이벌이자 친구로 함께했다”고 애도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1990년대 귀국한 후에도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음악은 흥겨운 멜로디와 친숙한 가사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를 끌었다.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58년 음악 인생, 전국노래자랑 마지막 무대
송대관은 수년 전부터 암 투병과 다양한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나, 끝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무대는 지난달 19일 KBS ‘전국노래자랑’으로, 변함없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불과 2주 전 방송된 이 모습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수 김흥국은 “무명 생활을 극복하고 스타로 떠오른 과정이 내 ‘호랑나비’와 비슷해 더욱 남다른 감정이 든다”며 “그는 후배들에게 정말 따뜻한 선배였다. 좋은 곳에서 계속 노래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현숙 역시 “송대관 오빠는 평생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당당하게 살았다. 항상 ‘열심히 해라잉’ 하며 등을 두드려 주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문화훈장 수훈, 그리고 가수 협회장까지
송대관은 음악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린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8년에는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을 역임하며 가수들의 권익 보호와 후배 양성을 위해 힘썼다. 그는 생전 “내 인생 철학은 ‘인조이 마이 라이프(Enjoy My Life)’다. 부족한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면 더 밝은 내일이 온다”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별세 소식은 트로트계를 넘어 대한민국 음악계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수많은 팬과 동료 가수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며, 그의 노래가 남긴 감동과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고인의 빈소와 장례 일정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트로트의 거장이 남긴 음악과 정신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될 것이다.